화물연대 "죽이려면 죽여라, 어차피 이렇게는 못산다"
https://www.youtube.com/watch?v=nAb13Eip2jI
전국 민주노동조합 총 연맹(민주노총) 조합원과 농민, 학생, 시민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민중대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민생파탄 국가책임 인정, 민생개혁입법 쟁취, 쌀값 정상화, 이태원 참사 대통령 사과, 민주주의 파괴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을 이끌고 있는 이봉주 전국 민주노동조합 총 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위원장이 3일 열린 노동자대회 뒤 <오마이뉴스>를 따로 만나 한 말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이번 파업을 계기로 '노동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며 "(화물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밟아 죽이려고만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 (정부가 노동자를 대상으로) 싸우고자 한다면 싸울 수밖에 없다"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화주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가능성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위원장은 "우리는 이미 더 물러설 곳이 없다"면서 "손해배상을 물린다고 해도 모두의 안전을 위해 안전 운임제 확대 요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날 화물연대를 포함한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화물연대 총파업 승리', '노동개악 저지', '노조법 2·3조 개정', '민영화 중단' 등의 기치를 걸고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전국에서 약 6000여 명의 노동자가 모였다고 민주노총 측은 밝혔다.
연단에 오른 이봉주 위원장은 "하루 14시간 이상씩 운전하며 졸음운전을 하면서 위험하게 도로를 달리면서도 한 달에 내 손에 쥐는 돈은 300만 원 안 된다"며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화물) 노동자들을 '귀족 노동자', '이기적인 노동자'의 파업'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 하나다. 화물연대가 화주의 이익을 저해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임금노동자를 특수고용 노동자로 만들어 모래알처럼 흩어놓았는데, 허락 없이 모여 노조를 결성하고 자기 권리를 되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화물 노동자들은 달리는 차 안에서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그리고 사망한 운전자를 싣고 달리던 트럭이 앞차를 들이받아도 산재사고로 집계되지 않는다. 교통사고 사망자로 잡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안전 운임제도의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는 그 사고 통계에는 이렇게 장시간 노동으로 쓰러져 간 화물노동자가 포함돼 있다"라고 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과 여당은 민주노총을 눈엣가시로 여기며, 장관과 국회의원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온갖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며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의 요구는 일한 만큼 제값을 받고, 목숨 걸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면서 "노동조합할 권리를 보장하고, 실질 사용자인 원청과 교섭하는 거다. 손해배상 폭탄으로 노동자를 죽이지 말라"라고 촉구했다.
이날 전국 노동자대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2022 전국민중대회'에 합류해 윤석열 정권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갔다. 이들은 집회 후 인근에 자리한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 당사로 이동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알렸다.
민주노총은 오는 6일 전국 15개 지역에서 동시다발 총파업·총력투쟁대회도 열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는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는 화물연대의 파업에 강경대응으로 일관해왔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한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쟁의행위로 인한 국가핵심기반의 일시정지는 재난에서 제외한다'는 재난안전법 시행령 제44조와 배치되는 이례적인 결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가 파업을 개시한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물류 시스템을 볼모로 잡는 행위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별 운송거부, 운송방해 등의 모든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닷새 뒤인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 지킬 때보다 훨씬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법치가 확립된다"라고 한층 더 강경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시멘트 운송 분야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하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운송 업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운행정지 및 자격정지뿐만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라고 으름장을 놨다.
원 장관은 지난 1일 SNS에 "민폐 노총 손절이 민심", "민폐 노총이 되어버린 민노총"이라고 감정적인 발언을 올리기도 했다.

여당도 정부의 결정과 발맞춰 노동자를 향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일 국회 비대위 회의에서 "(화물연대 파업은) 국가 물류를 볼모로 삼은 정권 퇴진 운동"이라면서 "민주당과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대선불복 좌파연합이 체제전복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 색깔론 공세를 펼쳤다.
화물노동자의 노동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노동자와 운수사업자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로 과로와 과적, 과속을 막기 위해 시행된 화물 노동에 대한 일종의 최저임금제다. 이 제도는 지난 2018년 4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이 개정되면서 2020년 컨테이너와 시멘트 운송에 한해 적용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11월 24일 정부 브리핑 중 "운임을 이렇게 법적으로 정해서 화주들을 처벌하는 것이 이게 과연 적절한 방법인지, 이건 전 세계적으로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대통령 직속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김문수 위원장도 2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안전 운임제에 대해 "세계적으로 없는, 희한한 제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전 운임제와 유사한 제도가 시행된 해외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호주 뉴사우스 웨일스(NSW) 주의 경우 지난 1989년부터 안전 운임제를 시행해왔다. 안전 운임제는 연방 전체로 확대됐다가 폐지됐는데, 지난 5월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 이 제도를 다시 도입하기로 했다. 캐나다에서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주(BC 주)가 밴쿠버 항만 컨테이너를 대상으로 최저운임제를 운영 중이다. 브라질도 지난 2018년 화물 운송 노동자의 총파업 이후 '화물 운송 최저운임 법'이 제정·시행됐다. 해당 법안은 품목, 거리, 하역비용 등에 따라 최저운임을 지급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위반 시 실제 지급된 운임과 최저운임 간 차액의 2배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안전 운임 연구단이 조사해 3월 28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적 경험 비율은 안전 운임제 시행 이전 24.3%에서 시행 이후 9.3%로 감소했다. 과속 경험 비율 역시 기존 32.7%에서 시행 이후 19.9%로 줄었다.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 경험도 안전 운임 시행 전 71.8%에서 53.3%로 감소했다. 2020년 안전 운임제 시행 이후 컨테이너·시멘트 화물차주의 월 순수입 역시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